웹소설 나도 쓴다!/항상 웃어줘!

항상 웃어줘! - 15

장자의 꿈 2021. 1. 26.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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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증

 

 

 예인은 뉴욕의 생활에 망설였다. 단순히 위로를 받기 위해 왔던 한국은 그녀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이제 학점 관리만 잘하면 졸업이다. 공부는 즐거웠다. 물론 음악도 사랑했지만 문학의 깊은 의미는 그녀를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결과가 정확하게 보여주는 학업이 즐거웠다.

 

 그리고 오닐과도 정리도 필요했다. 자신의 어떤점을 좋아해주는건지 잘은 모르지만 생각에 잠긴 지금은 아무렇지 않았다. 연주회 투어의 스텝일도 즐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정확하게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았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명확해졌다. 망설일 것이 없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우선 제일 하기 싫은 일이지만, 희재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뉴욕의 학업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아마 희재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그의 곁에서 평생 함께 지낼 것이다.

 마음을 정리한 예인은 속이 후련했다. 요즘 가끔 자신을 쳐다보는 희재의 시선이 불안했다. 자신의 지금 이러한 생각을 꿰뚫어보는 희재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리오는 밤 12시에 영업을 시작한다. 가게의 오픈을 준비하며 희재는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어젯밤 예인은 다시 뉴욕으로 가 학업을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언젠가 그래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녀 없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리오를 둘러봤다. 조는 오랫동안 자신과 함께 일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리오를 잘 알았다. 무엇보다 음식을 담당하는 총괄책임자인 조는 경영에서도 그 누구보다 신뢰했다. 그에게 맡긴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것이다. 이젠 한시도 떨어질수 없는 예인 곁엔 자신이 있을거다. 자신의 바보 같은 이런 결정을 조는 이해해 줄거라 확신했다.

 

 같이 뉴욕으로 간다는 말을 하는 희재의 표정은 밝았다. 조는 놀라지도 않았다. 예인은 당황하기도 했지만 금방 함박웃음을 지었다. 함께 공항으로 출발하며 둘은 손을 잡았다. 한국에 올 때는 혼자 왔지만 갈 때는 둘이 함께였다.

 

 

 오닐은 예인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일부러 예정에도 없던 한국에서의 연주회를 잡았다. 하지만 3일 동안 진행되었던 한국에서의 연주회는 보고싶던 예인의 모습은 커녕 자신이 보낸 메일조차 읽지 않았다.

 불안해 하던 오닐을 어느날 메리언은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여전히 맥주와 담배를 끼고 사는 메리언은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답답해 하기도 하고 화도 내고, 또 자책하는 오닐의 말을 계속 듣기만 했다. 등받이가 딱딱하고 가운데가 푹신한 소파가 마음에 드는 듯 편안하게 기대앉아 오닐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닐, 그때 파티장에서 봤던 잘생긴 청년 기억나? 예나, 표정 없던 그 애가 유일하게 활짝 웃어주던 그 남자. 기억하겠지. 왜 모른척 하는거지?

 오닐, 너는 그가 아니야. 더 냉정하게 말해줄까. 예나는 자넬 교수님, 외국에서 만난 같은 같은 국적의 남자, 그거야.

나도 알겠는데 모르는 척하는 그런 못된 아이 같은 질투 그만해. 왜 그렇게 부정하는지 모르겠어. 혼자서만 사랑하는거야? 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사랑을 하는거야? 그만 정리해. 그리고 잊어. 예나와 그 청년,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해. 그것도 아주 깊이. 두 사람 사이에 ,자네도 그 어느 누구도 끼어들 수 없어. ”

 

 담배연기를 깊이 마시며 메리언은 자신의 악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 같았다. 깨어질까 소중히 여기며 두 손으로 안아주던 그 남자의 표정을 볼 때 이미 사랑에 빠져있었고 예나는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지 못한듯했다. 하지만 잘 어울리는 그 두 사람에게 완전한 축복은 해 주지 못할듯하다. 내 앞의 또 다른 청년, 오닐 때문이다. 지금 이 상처를 이겨내고 다시한번 성장할거라 믿었다.

 

 오랜만의 화창한 날씨다. 그녀가 항상 앉아있던 곳에 무심히 눈길이 갔다. 어떤 남자가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오닐은 고개를 돌리다 옆의 작은 여자에게 시선이 꽂혔다.

 예나다. 그녀는 그녀의 몸보다 두꺼운 책속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발걸음이 빨라져 그들에게로 가까이 갔다. 하지만 걸음이 멈쳤다.

 옆자리에 앉은 그 남자는 파티장의 그였다. 그의 손은 그녀의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오닐은 가던 걸음을 돌렸다. 머리가 복잡했다. 자신에게는 한번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뺏긴것 같았다. 그 남자가 미웠다. 그 여자는 나의것이어야만 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자신의 연구실로 향하다 발길을 돌려 그는 음악강당으로 옮겼다. 무언가 해소할것이 필요했다. 역시 음악만이 존재할 뿐이다.

 

 예인은 기다리겠다는 희재를 아파트로 돌려보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고 그러니깐 돌아가 있으라고 부탁했다. 궁금한 표정의 희재를 뒤로 한 채 예인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연구실로 향했다.

 잠겨진 연구실앞에 그의 조교인듯한 짧은 갈색머리의 학생이 음악강당으로 손짓을 했다. 예인은 그를 보고 무슨말을 해야하나 생각에 잠기며 걸음을 옮겼다. 강당 밖엔 사람들이 모여 서로들 웅성거리고 있었다.

강당 안에는 큰소리로 화를 내는 오닐이 있었다. 그의 클래스 학생들의 연주가 맘에 들지 않는듯 화를 내고 있었다. 모여 있던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 도망치듯 사라져갔다. 그에게 호되게 짜증섞인 소리를 듣던 여학생은 눈물까지 보였다.

 예나는 오닐의 다른 모습에 두려웠지만 한번은 부딪쳐야 한다고 다짐하며 다가갔다. 소리치던 그는 모두들 나가라고 소리쳤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오닐 뒤에 섰다. 오닐은 짜증이 났다.

 

내가 나가라고 했지! 내 말이 우스워?”

 

 그래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학생을 향해 오닐은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았다. 그 곳엔 그토록 보고싶던 예나가 있었다. 자신의 이런 모습까지 들켜버린 것 같아 예나에게 창피했다. 하지만 이내 감정을 숨기고 사무적인 태도를 취했다. 예인은 오닐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런 예인을 오닐도 쳐다봤다.

 

오닐, 그동안 내가 당신을 오해하게 한 점이 있다면 미안해요. 난 당신의 음악이 좋아요. 당신의 바이올린 선율을 사랑해요. 연주회의 당당한 모습을 존경해요.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에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흐트러짐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예인에게 화를 낼수 없었다. 오닐은 멍하니 서있는 자신이 바보같았다. 그런데 순간 당황했다. 예인이 그를 따뜻하게 포옹 한 것이다. 계속 미안하다며 말하는 예인에게 오닐은 그녀에게 쌓였던 분노와 집착이 사라짐을 알았다. 예인의 팔을 잡고 살짝 밀며 말했다.

 

예나, 그때 호텔에서의 일 사과하고 싶었어요. 난 내 감정에 충실히 표현하고 싶었는데 당신을 놀라게 하고 다치게 한 점 미안해요. 그래서 당신을 계속 찾았는데 당신은 없었어요. 사과할 기회도 없고 어떤 변명도 할수 없는것에 너무 화가 났어요.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그리고 오늘 당신 너무 아름다워요. 사랑받고 있는 거겠죠.”

 

 예인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닐은 그녀를 향한 감정이 오래 묵은 감정처럼 느껴졌다. 예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그녀의 사랑을 축복했다. 진심이었다. 돌아서는 예인의 모습에 오닐의 가슴이 메워왔다.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사과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안도했다. 이걸로 그의 가슴앓이 사랑은 끝났다.

 

 예인은 오랜 통증이 한순간 없어진 기분이었다. 지나는 길 평소에 관심도 두지 않았던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섰다. 예인은 밖으로 보이는 아이스크림의 색깔이며 그들이 서로 엉켜 붙어 있는 모양새에 정신을 놓을 지경이었다. 입안에 침이 고였다. 정신 못차리고 유리에 붙어 있던 예인은 뒤에 서서 어이없이 웃는 희재의 모습이 비춰보였다.

 그리고 잠시후 예인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행복해했다. 맛있게 먹는 예인의 모습에 의아했다. 평소 아이스크림을 잘 먹지 않는 그녀가 이렇게 잘 먹으니 말이다. 벌써 하나를 다 먹은 예인은 희재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쳐다보고 있었다. 희재는 큰 소리로 웃으며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의 예인을 품에 안고 걸으며 그저 차가운 음식을 한꺼번에 먹는 그녀가 염려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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