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몽 그리고 해방
시간은 따로 움직이는 듯 했다. 시나는 여기 지금 그대로 서있는데 시간이라는 존재는 이미 저만치 가버린 듯 하다. 나만 가만히 있고 다들 움직여 사라져 버리는것처럼.
시나는 전남편이자 그녀가 사랑했던 그가, 실체를 드러내기 전까지 정말 사랑했다. 2년 남짓한 연애기간 동안 그는 시나를 위한 사람인 냥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만나왔다. 잘 웃고 장난도 잘 치며, 무엇보다 시나의 부모님이나 친인척과도 살갑게 대했다. 시나는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그가 내 남자라는 사실에 기뻤다. 그의 부모님도 인품이 좋아 보여 그녀의 결혼생활은 꽃길 만 같을것이라 당연히 생각했다.
신혼여행부터 삐걱거렸다. 그는 연애하면서 알던 그가 아닌 듯 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시나는 그가 다른 일로 인해 기분 나쁘거나 자신이 실수 했나보다 생각하며 그에게 맞춰줬다.
점점 그 행동은 심해졌다. 막말도 서슴치 않았다. 시나는 점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되돌릴수 없었다. 장녀로 부모님을 실망 시킬수 없었다.
이제 결혼생활 시작했는데 자신이 조금만 더 잘하면 그도 예전의 그로 돌아올 수 있을 것 이라 믿었다. 그래서 더욱 시댁 부모님에게도 잘하려 노력했다. 시부모님께 매일 안부 전화하며 친밀감을 표현했다. 시어머니는 혈색이 안 좋은 분으로 항상 주눅 들어있는 표정과 행동을 취했다. 반면 시아버지는 항상 자신만만한 태도로 목소리 톤도 꽤 커서 주변사람들이 깜짝 놀라곤 했다. 시어머니는 시나에게 항상 이 말을 반복했다.
“너가 잘하면 된다. 걔가 지 아버지에게 하도 엄하게 커서 그렇지, 여리다. 너만 참으면 되고...”
시나는 이해할수 없었다. 왜 나만 참아야 하는지. 그녀도 위로를 받고 싶은 것 뿐인데, 시어머니는 눈치를 살피며 눈을 이리저리 깜박이며 그 말만 했다.
마침내는 폭력이 시작되었다. 시나는 회사에서 야근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문을 열자마자 쿠션이 날라왔다.
“야! 바로 퇴근하고 집에 와야 하는거 아냐? 니 까짓게 멀 한다고 회사놀이야? 어? 너가 벌면 얼마나 벌어? 어? 똑같애. 그 애비나 애미에 그 딸년까지. 에이쒸... 짜증나. 이러니깐 내가 집에 오고 싶겠어?”
시나는 뜬금없이 쌍욕을 해대는 그에게 화가 났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나? 그렇다고 자신의 아내에게 저런 욕을 하다니.
“오빠,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을 해주면 되는거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 부모님까지 언급하는건 참을수없어요. 도대체 결혼하고 왜 그래요? 이럴려고 결혼한건 아니잖아요? ”
그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거실화를 신는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시나를 거칠게 들어 거실에 던졌다. 이 모든게 순간이었다. 시나는 거실에 내팽겨쳐져 움직일수 없었다. 그녀의 치마는 찢어지고 눈을 깜박이는게 너무 아팠다. 입에서 신음만이 나올뿐이었다.
“야, 이 년아, 어디 뚫린 입이라고 나불거려? 어? 어우씨...”
시나는 눈물조차 나오지않았다. 더욱 믿을수 없는 것은 그는 맨 정신이라는 것이었다. 일어나 앉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울 때 그는 위에서 내려보며 한쪽 입을 씰룩거리며 음흉한 눈으로 한 발로 그녀의 찢어진 치마 안으로 발을 들여밀었다. 시나는 손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그가 그녀의 손을 발로 밟았다. 짧은 시나의 외침. 이미 짐승으로 돌변한 그는 시나의 뺨을 후려치고 다시 거실로 내팽겨친 그녀 위로 올라와 욕구를 해소했다. 시나는 그저 빨리 끝나기를 바랄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진 화장이 지어져 아무 소리 조차 낼수 없었다.
이후 그는 한마디 사과 없이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시나는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보다 이제 이 모든 것이 시작이라는 사실에 더 절망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도움을 ,누구에게라도 요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창피했다. 부끄러웠다. TV에서만 보던 가정안의 폭력이다. 언어폭력, 성폭력. 입안이 터져 부어올랐다. 결혼하고 제대로 된 성생활이 아닌 폭력으로 이루어졌다. 마치 노예 부리듯 행동하는 그의 거침없는 행동에 한마디 조차 할수 없었다. 매일밤, 침대에서 자는 시나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그의 욕구를 해소할때마다 시나는 아랫입을 깨물었다. 그는 이 모든 행동이 당연시 되는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시나는 하루 하루 죽어가고 있었다. 샤워 할 때마다 거울에 비친 바짝 마른 시나는 다리 안쪽에 멍이 사라지지 못했다. 퇴근 후 집에 올 때면 전속력으로 질주하듯 집에 도착해 준비를 해야만 했다.
시나의 복숭아 빛 뺨은 움푹 들어가기 시작했다. 싱그럽게 웃음 짓던 눈빛은 이미 그 빛을 잃어버렸다. 몸무게가 계속 빠졌다.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자 회사생활을 계속 할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시나는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그녀가 숨 쉴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친정에도 자주 갈수 없었다. 이대로 엄마를 보게되면 눈물 날텐데, 그리고 딸이 맞고 사는 걸 만약이라도 알게 되면, 그 사실이 더 싫었다. 하지만 그는 자주 처가에 가서 착한 사위역할을 했다. 시나가 알지 못하는 사이, 그는 돈을 빌려 야금야금 사용하고 있었다.
더욱 시나는 마음을 붙일곳이 없어졌다. 밤마다 끌려나와 행해지는 거친 폭력을 감수해야 했다. 시나는 거실창문에 얼굴을 대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이대로 눈을 뜨지 않게 해 주세요.”
무감각해져 가는 시나의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의 언어폭력은 감당하기 벅찰 뿐이었다. 시댁에 알리면 그녀의 편이 되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도 접었다. 시어머니는 시나의 눈치를 살피며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알고 있는거야. 그래서 처음부터 그런 말을 했던거야. 난 바보같이 뭘 기대한거야’
절망만 가득했다.
그가 귀가하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이유를 물을수 없었다. 돌아오는건 폭력이기 때문이다. 시나는 산부인과를 더 이상 가지 않았다. 몸 구석구석 멍 자국도 창피했지만 아기를 갖는 것이 두려웠다. 그럼 더욱 그에게서 벗어나질 못할텐데,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어느날,시댁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시나는 단정한 옷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매일 소리만 지르는 시아버지가 왠일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저녁에 오라고 했다. 감정의 기복이 그와 똑같은 시아버지가 두려울뿐이었다.
집안은 부산했다. 손님이 왔는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시나가 들어서자 순간 조용해졌다. 시나를 주목하는 눈빛에 시나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인사를 했다. 다시 시나는 투명인간 마냥 저들끼리 떠들었다.
시나는 시어머니를 도와 음식을 준비했다. 시어머니는 시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채 중얼거리기만 했다.
언제나 고함과 괴성을 일관하던 시아버지는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나야. 너도 알꺼다. 우리 아들이 얼마나 착한지. 그래서 그런지 차마 말을 못하겠다고 하는구나. 결혼한지 올해로 3년이지만 아이도 없지않니? 너도 할 말은 없을꺼다. 우리 아들은 날 닮아 절대 그럴리 없지만 너가 문제겠지. 그렇지? 노력해도 안되는건 안되는거지. 이혼해줘야 겠다.”
시나는 그 이후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말 꺼내기 무섭게 짐승같은 아들 옆에 앉은 빨간 립스틱의 여인은 호들갑을 떨며 배를 연신 만지며 시나를 쳐다보며 비웃었다. 시나를 때리며 막말을 쏟던 남편은 그 여자의 배를 보석 다루듯 만지며 지들끼리 키득거렸다.
시나는 세상이 빙빙도는 것 같았다. 이 모든건 철저한 연극이고 난 그 속에 앉아있는 관객이다 생각했다. 그녀는 이 모든 결과는 바로 너 때문에 이혼한거다 말하는 시아버지를 바라보며 이곳은 시댁이라는 다른 왕국이다 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어머니를 쳐다봤지만, 시어머니는 아들 옆에 앉아있는 진한 화장의 내연녀를 챙겨주기 바빴다.
‘나 지금 뭐하고 있지? 왜 내가 여기 있지?“
그렇게 그녀의 결혼은 그들의 불륜으로 인한 임신으로 끝이 났다. 우습게도 시나는 어떤 말도, 화도 내지않았다. 무덤덤한 그녀의 반응에 전남편은 감정없는 좀비년이라는 막말로 마지막까지 버라이어티하게 장식했다. 당연히 위자료, 그런건 없었다. 오히려 큰소리 내며 너가 문제라며 우리가 받아야 하는것이라고 소리질렀다. 시나는 그들의 지껄이는 소리보다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가 더 걱정될뿐이었다.
다 지난 시간이다. 시나는 거실의 작은 소파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셨다. 폭력으로 두렵던 결혼생할은 끝났고, 부모님은 나의 이런 사실도 모른채 돌아가셨다. 어쩌면 자신의 딸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모르고 떠났다는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야 엉긴 그 실타래에서 벗어나 현실적으로 바라볼수 있게 되었다. 하염없이 생각에 잠기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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